2023.03.07. - 광주일보 - 대학 강사의 소정 근로시간이란 무엇인가- 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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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균관대분회 작성일23-07-06 16:17 조회2,117회 댓글0건본문
대학 강사의 소정 근로시간이란 무엇인가
- 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
2023년 03월 07일(화)
소정 근로시간(所定勤勞時間)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정해진 노동 시간을 말한다. 대학 강사가 대학과 맺는 임용 계약에서도 원칙적으로는 소정 근로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계약서에는 통상 강의시간만을 지정해 왔다. 강의시간이 아닌 시간에 강사는 강의 준비와 학생 평가 및 상담을 수행해야 하며, 강의의 질적 하락을 막기 위해 연구자로서의 임무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강의시간이 아닌 시간에 수행하는 노동을 측정할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여 강사의 임금을 강의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편이 정착된 것일 뿐, 강의시간이 소정 근로시간인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 법원은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판결을 내려 왔다.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의하면 통상 1주간의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바, 강사의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강사의 실제 노동시간을 강의시간의 세 배로 산정하여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했고, 주당 5시수 이상 강의해온 강사들은 15시간 이상의 소정 근로시간을 인정받아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늘상 승소해 왔던 것이다.
왜 강의실 밖의 노동시간을 강의시간의 두 배밖에 산정하지 않아 4시수를 맡는 강사들이 퇴직금을 적용받을 수 없는지 명쾌한 설명은 없었지만, 적어도 대학 강사의 강의시간이 소정 근로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사법부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1월 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강사가 대학과 맺은 계약서에 표기된 강의시간만 근로시간으로 보겠다고 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근로기준법의 유급휴가 조항도 1주간의 소정 근로시간 15시간을 요구하고 있는데, 연차휴가와 주휴수당을 청구한 강사에게 강의실 밖에서 수행하는 노동시간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이 계약서에 표시된 강의시간만 노동시간으로보겠다고 한 것은 기존 판례에 비해 퇴행하는 판결이다.
판결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강의 준비와 성적 평가 등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당사자들 사이의 협의 하에 이를 일정 시간으로 정하여 강의시간과는 별도의 근로시간으로 추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고, 그러한 합의를 관련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지도 않다.” 강사가 대학과 자유롭고 평등하게 계약서 조문을 조정할 수 있었는데 왜 안 했냐는 말이다. 물정 모르는 소리다. 당연히 승소할 퇴직금 소송을 제기하는 강사도 수만 명 중 수십 명에 불과한데, 계약서 조문에 왜 실제 노동시간이 아닌 강의시간만 적는지 따질 수 있었던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 될 것인가. 사실 단 한 사람의 강사도 소정근로시간을 별도로 적은 계약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관련 법령에서 퇴행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판사가 대학의 횡포 앞에 맨몸으로 노출된 강사의 처지를 외면하는 퇴행적 판결을 한 것이 아닌가.
판결문에는 또 이런 대목도 있다. “(숙련되어 있었으므로) 강의 준비 및 학사 행정 업무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강의해온 강사는 별도의 시간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정말 물정 모르는 소리다. 아무리 숙련된 강사라도 매번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채점하지 않으면 강의 평가 폭락과 이의 신청 폭증을 피할 수 없고, 다음번 강사 임용에서 탈락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숙련된 판사라도 매번 최선을 다해 판단하지 않으면 이번처럼 퇴행적 판결로 혼돈의 결과를 파생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계약서에 적힌 강의시간만 소정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면, 수업 준비와 보고서의 피드백 및 중간·기말고사 평가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앉혀 놓고 자습시키면서 교탁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 학생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도 자습하는 학생들 앞에서 학생 하나하나 불러내 교탁 옆 의자에 앉혀 놓고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강의의 질적 하락을 막기 위한 연구도 강의실 교탁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들이 강의시간에 자습을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될 것이다.
이런 희극을 막기 위해 앞으로 현장에서 강사들은 강의시간 외의 노동시간을 계약서에 반영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함께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지난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타협을 이룬 2019년 개정 강사법의 결과 5시수 이상 강의를 하는 강사들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한 퇴직금도 다시 혼란에 빠질 소지가 있다. 대학 강의의 절반을 강사가 맡아 왔다. 이미 얻어낸 퇴직금을 뺏기면 법정 다툼 등의 사회적 비용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법원이 남았다. 서울고등법원의 오판을 대법원이 바로잡아 주기를 기대한다. 지금 우리의 고등교육은 안팎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사법부가 고등교육 붕괴의 한 요인이 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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