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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칼렴(2019.5.13) "교육부-대학의 고등교육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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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균관대분회 작성일19-07-16 19:55 조회5,7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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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강사법이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강사법과 강사법시행령은 강사를 고등교육법 상의 교원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1년 이상의 계약기간을 보장하고,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하고, 사회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퇴직금을 지급하게 하는 등의 처우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단체와 강사단체 및 국회 추천 인사들이 강사제도 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이다. 그동안 대학에서 강사는 전임교원의 1할 안팎의 인건비로 연구와 강의의 절반을 감당하면서도, 법률 밖에서 자의적으로 활용돼오던 일용잡급직이었다. 강사에 대한 가혹한 착취 구조를 조금이나마 개선하자는 것이 개정강사법의 법률 정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해당사자간의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나 흔히 4대보험이라고 불리는 사회보험 중 건강보험은 관련 법률이 미비하여 우선은 이를 제외한 3대보험만 적용받게 되었고, 퇴직금 역시 해석에 미흡한 점이 있어 당장 적용 여부가 불투명하며, 방학 중 임금도 어느 수준으로 지급할지에 대한 논란이 남아 있다. 개정강사법의 처우 개선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대한민국 노동자가 당연히 받는 보장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단계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개정강사법을 시행하기 위해 개별 대학들이 당장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대단히 미미하다. 게다가 정부는 강사 처우 개선 예산을 일부 편성하였으며 앞으로 추가 확보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대학의 부담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강사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

언론에선 “대학들이 강사법을 기회로 조직을 축소”한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 그러나 이럴 때는 ‘기화(奇貨)’라고 쓰는 것이 옳다. 핑계 댄다는 말이다. 재정 운용 여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대학의 전체 적립금은 8조원을 육박하고 있다. 최근 대학은 각종 수익 사업들을 우후죽순처럼 시도하고 있고, 유학생 등 정원외 입학생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비교적 정부 통제가 덜한 대학원 등록금은 경쟁적으로 인상하였고, 강좌 개설 비용을 아끼려고 인터넷 강좌와 대형 강의 등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전임교원 확보율을 무시하고 각종 비정규교수를 양산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다. 이윤 추구의 방향에서 해오던 구조조정을 강사법을 기화로 가속화하며 자신들도 참여하여 도출된 사회적 합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연구와 교육의 절반을 감당하던 구성원들을 방출하여 연구와 교육 기능이 붕괴될 것도 안중에 없다.

대학 경영진들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개정강사법이 신자유주의적 야욕을 거스르는 방향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4개월짜리 강사들에게 1년짜리 계약서를 써주는 것은, 가장 낮은 비정규노동자들에게까지 사회보험을 보장하는 것은, 한국적 노동시장 유연화의 반대 방향이기 때문이다. 학문후속세대며 소수학문 보호 등을 구두선으로 앞세우는 것도 결국 노동시장 유연화의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문제는 이 칼이 대학 구성원에게 피해를 입히고 결국 대학 전체를 망가뜨리며 나아가 사회에 폐해를 끼치는 파국의 칼이 되리라는 점이다. 대학들은 오랫동안 조직 축소와 효율성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가며 학문후속세대나 소수학문은 안중에도 없음을 과시하였다. 신자유주의적 경영 논리 아래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비롯 돈 안 되고 취업 안 되는 학문들은 이미 충분히 대학에서 위축되어 왔다. 시민들이 민주화를 통해 확보한 자율성을, 대학은 이윤 창출과 그에 따른 학문 다양성 파괴의 방향으로 악용해 왔다. 이미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정한 대학 경영진에게 강사법은 가속 페달 한 번 밟을 만한 핑곗거리일 뿐이다.

대학들이 파국의 칼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공성을 실현할 궁극적 책임은 정부에게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은 유초중등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 전략을 구상할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이라고 해서 공공성을 외면하고 사익 추구의 전쟁터로 방치한다면, 한유총 사설유치원 사태에 공공성 논리로 엄정하게 대응하였던 정부의 입장은 그 진정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작금의 강사 구조조정 사태는 대학이 자율성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현재 정부는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국가장학금 등으로 이미 상당한 공공 예산을 대학에 지원하고 있으면서도, 자율성의 성채를 인정해주어 공공성에 입각한 정책적 개입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결정은 대학에 절대적 위력을 발휘해 왔다. 지난 정권에서 재정지원사업의 요건으로 총장임명제를 제시하자 거의 모든 대학들에서 총장직선제가 폐지되었고, 국립대 중에서는 이 반민주적 정책에 항거하며 자결한 교수가 있던 부산대학교만이 총장직선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심리적 반값등록금 정책을 내세웠던 2011년 당시 정부는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대학에 허용해주되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만 국가장학금과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요건을 제시하였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등록금이 동결되었고 이 조치는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전임교원 확보율에 비정년트랙 교원들을 포함시켜주는 조치를 취하자, 대학들은 각종 비정년트랙 교원 양산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K-MOOC 플랫폼을 제시하자 대학들은 출결 관리도 안 되는 인터넷강의 확대 도입으로 화답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적 개입을 할 능력이 없다는 정부의 변명을 믿을 사람은 없다. 고등교육 개혁이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하면 차라리 호소력이 있고, 정부관료와 대학당국이 유착하여 대학의 이익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말하면 차라리 납득이 될 것이다.

연구와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대학의 도덕률이며, 그것을 잃으면 대학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다. 가치를 잃어버린 대학은 공동체의 짐만 될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여론은 대학에 대해 싸늘하다. 짐이라고 느끼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도움은 안 된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연구와 교육의 공공성은커녕 무한경쟁의 판을 키워왔으며, 공공재원이 투입된 대학에서 승자들은 패자들과의 낙차를 즐기는 기득권으로서 사적이익을 추구해왔다. 사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대학에서 금기가 되었으며, 성과 경쟁에 대한 관심만 장려될 뿐이다. 사회가 대학에 대해 무슨 신뢰가 남아있겠는가. 정부도 이 사회 여론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용혹무괴(容或無怪)라 하더라도, 정책 개입 능력을 갖춘 정부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임무 방기이다.

대학의 반공동체적 관성을 여기서 끊어내야만 한다. 대학이 개과천선할 의지도 없고, 강사법과 같은 아주 작은 개혁에서조차 엇나가기로 작정했으니, 이 대목에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 기능은 공동체 사회의 부수적 기능이 아니라 필수 기능이다. 필수 기능이 붕괴되고 공동체가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연구과 교육을 담당한 기관이 자력갱생이 안 된다면 외력으로라도 기능을 회복시켜야 하며, 공공성의 이름으로 그 외력의 역할을 하라고 정부 기관에 교육부를 둔 것이다.

실학자 정약용은 조선후기 적폐에 대한 근원 처방을 제시한 '경세유표'의 서문에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망하고 말리라!”는 말을 적어두었다. 그 뒤 백년을 거의 채우고서야 조선왕조가 망했으니, 정약용의 위기감에 비해 조선왕조는 제법 오래 버틴 셈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삐걱거리면서 홍경래난에서부터 진주민란과 동학농민전쟁 등 왕조의 무수한 백성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태가 이어졌고, 결국 조선왕조는 망했다. 강사법은 대학 현실에 대한 근원 처방도 못 되는 대증 요법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 낮은 수준의 개혁도 실현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연구와 교육은 끝내 붕괴되고 말리라.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강사들이 먼저 스러지겠지만 결국 대학 구성원 모두가 스러질 것이다. 그 폐허 위에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퇴행을 겪을 것이고 퇴행성 질환을 가진 정부를 갖게 될 것이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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