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원격수업 장기화에 대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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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균관대분회 작성일20-03-29 20:55 조회3,911회 댓글0건본문
원격수업은 비상 상황에서도 비정상이다
지금 코로나19가 인류 전체에 커다란 공포를 주고 있다. 예측불가능한 비상상황에서 한국정부는 예측가능한 방역원칙을 제시하여, 각국 정부의 모범이 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최대한의 정보를 확보하고, 신속한 정보 공유를 통해 시민의 자율적 방역 참여를 유도하였다. 비상상황에 당황한 각국 시민들이 사재기와 폭력으로 또 다른 사회 불안에 말려들고 있지만, 한국시민들은 한국정부의 대응능력을 신뢰하며 극복해 나가고 있다. 민주적 원칙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아쉬운 점들이 있다.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공공 부문의 인력 때문에 공무원들과 의료진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있다. 오히려 공공 의료 축소 때문에 충분한 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방도 있다. 직간접 피해자들도 부족한 복지 제도로 인해 생계의 절벽으로 몰리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게 하지 말자는 것이, 어떠한 사람도 그가 처한 조건 때문에 의료 체제에서 배제되게 만들지 말자는 것이, 예상 못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사회가 함께 구제하자는 것이, 공공성의 원칙이다. 지금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공공성을 충분히 갖춘 사회로 나아가자.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예측불가능한 비상상황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처 능력이 예측가능한 교육 영역에서는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될 때까지 개강 연기를 권유했다. 곧이어 “정상수업”을 “집합수업”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대신할 “원격수업”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원격수업의 폐단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것이었다.
고등교육의 역할은 학문의 확장과 재생산이다. 학문의 첨단에서 확장한 지식을 강의실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전수하며 재생산하는 것이 고등교육이다. 교육자 나름의 관점으로 정리되지 않은 학설을 의논하여 공인된 학설의 가치를 음미할 수도 있으며, 폐기된 학설의 이면을 뒤집어 새로운 학설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정설과 공식을 다루더라도 학생 나름의 관점으로 관성적 방법론을 뒤집는 날카로운 방법을 떠올릴 수 있으며, 전혀 생소한 영역을 개척할 단초를 얻어갈 수도 있다. 교육자도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더 명확히 전수할 내용과 더 비판적으로 접근할 영역들을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강의실이다. 강의실에서의 정상수업은 표준화할 수도 원격화할 수도 없는 가치를 지닌다. 실험, 실습, 실기 과목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 과목도 원격수업으로는 정설과 공식조차 제대로 전수하기 어렵다. 대학에서 정상수업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원격수업을 권장하고 나섰다. 대학의 한 학기 26주는 16~15주의 수업기간과 10~11주의 방학기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학기간을 고려한다면 최대 11주까지 개강을 연기할 수 있었다. 더이상 연기할 수 없을 때에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9월학기제든 원격수업이든 의논했어야 했다. 그러나 전국의 대학은 교육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미 개강하였고 원격수업을 진행중이다. 원격수업 도입하기로 하더라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11주의 준비 기간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 폐단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강의실 수업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열악한 질의 수업을 감내해야 한다. 중등교육 과정에서 익숙하게 활용하던 인강들의 완성도에 전혀 못 미치는 화질과 음질도 참아내야 한다. 질문과 피드백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기대 이하의 원격강의에 학생들은 당연히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대학은 추가 학점 이수를 허용하여 등록금 환불 요구를 무마하려 하고 있다. 티브이 시청하듯이 한 강좌 더 시청한다고 떨어진 수업의 질이 보상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당연한 등록금 환불 요구에 대학들이 잘못된 대응을 하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2차 추경을 통해 고등교육 질 저하 보상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교육자 입장에서는 강의실 수업과 비교할 수도 없는 막대한 추가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피피티 화면을 구성하고 녹화 대본을 만들고, 각자 보유한 조잡한 장비로 녹화와 녹음을 하고, 후편집을 하느라 정상수업에 비해 몇 배의 시간을 들여도, 결과물은 학생들의 조롱을 받을 만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 피해는 비정규교수와 정규직교수가 크게 다르지 않게 겪고 있다.
일부 대학은 강의실 공간 제약이 없으니 수강인원제한을 포기할 것을 압박한다. 고통이 이중 삼중으로 가중되고 있다. 이들 대학에서는 몇 배의 학생들을 한 강좌에 몰아넣고도 합리적 평가를 통한 동기부여가 가능한지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한번 정상수업의 방파제가 무너지니 고등교육의 합리성은 썰물에 쓸려나가듯 사라지는 것이다. 교육자들도 추가 노동이 교육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정부에서는 2차 추경을 통해 고등교육 질 추가 저하 방지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정상수업 대신 원격수업을 권장했다. 대학은 시스템만 준비해놓은 채로 원격수업을 강제하였다. 학생과 교육자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요청에 적극 동참했을 뿐이고 대학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원격수업의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미 개강을 한 이상 앞으로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는 폐단 속에서도 원격수업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와 대학이 책임을 지고 더 이상 폐단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선 성급한 원격강의 도입에 책임을 지고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하고 대책 마련에 서둘러야 한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요구와 교수자들의 추가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요구에 응하는 일이다. 원격수업으로 인해 이미 떨어진 질에 대해서는 보상해야 하며, 앞으로 질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앞으로 정부의 권고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며, 대학의 방침 역시 구성원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교육부와 대학의 책임이다.
또 한편, 그동안 대학 운영진들은 비용절감을 호소하며 대형강의와 인터넷강의를 들여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아왔다. 이번에 교육부에서 급하게 원격수업을 권고해도 대부분의 대학에서 무리없이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동안 대학들이 언제든 인터넷강의를 도입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꾸준히 투자해온 결과이다. 다행일까? 다행이다. 덕분에 이번에 인터넷강의의 폐해를 교수와 학생 모두 여실히 알게 되었다. 정상수업을 대체할 만한 시스템은 아직 없다는 점도 절실히 깨달았다. 대학 운영진도 더이상 인터넷강의라는 신기루에 대학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기를 바란다. 정부에서도 그동안 K-MOOC와 ACE, CORE 사업 등을 통해 인터넷 강의 개발에 큰 비용을 쏟아왔다. 제한적 용도로는 가능할지라도 대학의 정상수업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정책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원격수업은, 개별 교육자와 학생들이 원격수업 시스템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고등교육이 공공성을 지향한다면 단 한 사람도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없어서 소외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컴퓨터가 없어서, 거주지에서 와이파이를 쓸 수 없어서, PC방을 전전하며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을 생각해야 한다. 카드빚으로 노트북을 바꾸고 마이크를 구매한 교육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자막이 없으면 강의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
2020학년도 1학기의 고등교육이 완전한 실패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정부는 2차 추경을 통해 고등교육 비상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정부가 보여준 대응능력을 고등교육에서도 발휘해주길 바란다.
1. 원격 강의로 인한 교강사 추가 노동 보상하라.
1. 원격 강의 폐해에 대해 정부와 대학은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라.
1. 2차 추경에 고등교육 비상지원비 반영하라.
1. 인터넷 강의 상설화 시도 중단하라.
1. 원격강의로 인한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를 해결하라.
1.강사들에게 온라인강의 동영상촬영 기자재를 지원하라.
2020년 3월 27일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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